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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주인공

"당신은 나의 운명" - 한승엽, 이진영 부부 이야기

“당신은 나의 운명”

소문난 잉꼬부부 한승엽, 이진영 부부이야기



“작년 겨울에 입원 앞두고 집사람하고 강원도 쪽으로 여행을 갔었어요. 눈이 많이 와서 다음에 갈까 했는데... 또 언제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서 무작정 갔죠. 바닷가에도 눈이 많이 쌓였는데 눈 위에다 하트 모양 그리면서 서로 이름 쓰고 웃고 좋아하고 그랬죠. 다음에 둘이 꼭 다시 오자고 했어요.”



영화 같은 첫 만남과 꿈같은 결혼생활


결혼한 지 17년이 지났지만 아직 신혼인양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고 연애하는 기분으로 사는 한승엽 씨와 이진영 씨 부부. 두 사람이 만나 결혼하게 된 건 운명 같은 끌림과 적절한 밀고 당기기의 결과였다. 주유소 관리자로 일하던 남편 한승엽 씨는 손을 다쳐 인근 병원에 갔고 거기서 아내 이진영 씨를 처음 만났다. 당시 이진영 씨는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었고 승엽 씨는 장차 아내 될 사람을 운명처럼 알아봤다.


“뒤에 후광이 비친다고 하죠. 영화에서 말하는 첫 눈에 반한다는 게 뭔지 그때 알았어요.”



[사진]한승엽 씨와 이진영 씨의 모습을 담은 캐리커처. 남편 한승엽 씨가 직접 만들어 백혈병환우회에 보내왔다


승엽 씨는 병원의 수간호사에게 얘기를 해서 진영 씨를 소개받았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을 소개받았지만 승엽 씨는 진영 씨를 마음에 두고 있던 터라 계속 진영 씨에게 구애를 했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진영 씨 앞으로 요구르트 100개를 보낸 적도 있다. 혼자 먹을 수 없으니 주변 사람들과 나눠 먹게 되고 사람들은 당연히 누가 줬는지 궁금해 할 것이었다. 승엽 씨 나름의 전략이었다. 결국 진영 씨도 승엽 씨의 마음을 받아들였고 2년 반 연애 끝에 결혼했다.


“특별한 이벤트 같은 건 안했지만 아이들 낳고 살면서 심각한 부부싸움 같은 건 한번도 안 했어요. 집사람도 이 동네에서 우리 남편 같은 사람 없다고 그랬죠. 제가 최고라고요.”


술도 담배도 안 하는 승엽 씨는 퇴근 후면 곧장 집으로 와 아이들과 놀아주는 자상한 아빠이자 다정한 남편이다. 그런 남편을 최고라고 칭찬할 줄 아는 진영 씨. 승엽 씨는 결혼하고 나서 발톱을 직접 깎아본 적이 없다.


“배가 나왔으니까 발톱 깎으려면 힘들잖아요. 집사람이 어느 날부터인가 발톱을 깎아주었고 저도 그게 너무 좋더라구요. 그 뒤부터 발톱은 항상 아내가 깎아줬어요.”



백혈병 발병과 이식 수술, 그리고 또 재발


동네에서도 소문난 잉꼬부부였다. 아들만 둘이었지만 큰 아들은 공부를 잘 하는 믿음직한 아이고 둘째는 애교 있고 긍정적인 아이었다. 그러던 중 2011년 이진영 씨에게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이 내려졌다. 목에 이어 머리에도 야구공만한 혹이 생겼다. 검사가 이어졌고 진영 씨는 항암치료와 언니로부터 조혈모세포(골수)를 받아 이식수술을 했다.주치의도 어려운 케이스라고 고개를 저을 정도였지만 가족들이 똘똘 뭉쳐 위기를 이겨내자고 다짐했다.


“병원에 있을 때 보고 싶고 그래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늦은 밤에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인 적이 많았어요. 늦은 밤에 병원에서 전화가 가면 얼마나 놀랄지 아니까요. 혹시 무슨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건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 충분히 알죠.”


아내 진영 씨는 그렇게 목소리라도 듣고 싶은 마음을 참아 가며 병원 생활을 했다. 수술을 받고 나서 일 년 정도 외래로 치료를 받았다. 그러던 중 진영 씨가 갑자기 복부 통증을 호소했다. 별일 아닐 거라고, 그냥 체했거니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난소에서 혹이 발견되었고 수술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수술 날짜를 3일 앞두고 혹이 터져 인근 종합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병원 응급실에서 저런 환자를 왜 받았냐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 병원 환자도 아니었고 워낙 위중한 환자니까 그랬던 거지만 마음이 너무 안 좋더라고요. 수술을 해야 하는데 집도할 사람이 없다는 둥 하면서 시간을 끌더군요. 그러다 결국 수술을 했고 결과는 잘 되었다고 했지만 자궁을 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얼마 후 또 다시 복통을 호소한 진영 씨. 자궁을 들어냈는데도 그 자리에서 또 혹이 발견된 것이다. 주치의는 재발로 보고 2차 골수이식을 제안했고 이번에도 항암치료와 언니의 조혈모세포(골수)를 이식받았다. 



남편 승엽 씨도 몸이 굳고 혀가 말리는 증상으로 쓰러져


계속되는 진영 씨의 발병과 치료, 수술이 반복되는 동안 승엽 씨의 몸에도 이상이 생겼다. 2013년 5월 말, 승엽 씨는 갑자기 몸이 굳고 혀가 말리는 증상을 보이며 쓰러졌다. 어지러워서 서 있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직장에서 관리 책임자로 일을 하는 것은 본인의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승엽 씨는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정확한 병명도 원인도 모르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다 비뇨기과에서 호르몬 이상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호르몬 주사를 투여 받고 현재는 어지러운 증상이 약간 호전된 상태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기 시작했죠. 그 전에는 그래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었는데 계속 되는 병원 생활과 수술에, 제가 일까지 못하게 되면서 많이 어려워졌죠. 가족들 도움 받는 데도 한계에 다다랐죠.”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의 한승엽 씨도 이런 상황이다 보니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계속되는 어려움에 주변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고 여러 기관의 소개로 백혈병환우회를 알게 되었고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여전히 상황은 녹록치 않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어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요즘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신앙에서 위안을 많이 얻어요. 목사님 말씀에 끝도 없이 눈물을 쏟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꿈을 꾸었는데 그 얘기를 목사님에게 하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면서 기도 열심히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왠지 그 이후로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아요.”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함께 할 수 있다면 바라는 것 없어


진영 씨는 현재 이식 수술과 치료를 마치고 병원에서 퇴원한 상태다. 승엽 씨는 아이들을 돌보며 근근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내고 있다.


“집사람이 이제 건강해지고 저도 이 정도만 일상생활 할 수 있으면 정기적으로 월급이 들어오는 일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경제적으로도 좀 안정되고 또 치료도 잘 받을 수 있고. 아이들도 단란한 가정에서 잘 돌볼 수 있게 되겠죠. 다른 건 필요 없어요. 건강하게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다면요.”


매년 연말이면 승엽 씨와 진영 씨 부부는 소원을 적은 풍등을 날린다. 아이들과 함께 소원을 적고 눈을 지그시 감고 기도까지 올리면서 하는 작은 이벤트다. 승엽 씨와 진영 씨가 적은 소망은 무엇일까? 그 답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올 겨울에도 ‘건강’과 ‘사랑’을 적은 풍등을 날리는 승엽 씨 부부를 기대해본다.